접시에 담긴 파스타의 세계

LIFE, STYLE & TASTE · PASTA

접시에 담긴 파스타의 세계

면 모양에서 요리까지, 그리고 접시 너머의 이야기.

랍스터 파스타 한 접시
랍스터 파스타. 사진: Alessandro Rossi / Unsplash

넓은 접시 한가운데 링귀네가 부드럽게 감겨 있다. 윤기 있는 면 위로 랍스터가 놓이고, 레몬 향이 가볍게 스친다. 맛있어 보이는 한 접시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왜 이 요리에는 스파게티나 펜네가 아니라 링귀네를 썼을까?

파스타를 ‘면과 소스’로만 생각하면 놓치는 것이 많다. 길고 가는 면, 넓은 리본, 홈이 파인 튜브, 속을 채운 작은 주머니까지.

모양은 장식이 아니라 소스를 붙잡고, 재료를 품고, 입안의 질감을 바꾸는 방법이다. 국제파스타기구는 파스타의 형태가 500가지 이상이라고 소개한다.

그 많은 모양에는 지역의 식재료와 손기술, 사람들이 즐겨 먹어 온 방식이 담겨 있다.1

파스타는 어디에서 왔을까?

파스타의 시작을 한 사람이나 한 나라의 단일한 발명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밀가루 반죽을 밀고 자르거나 익혀 먹는 문화는 여러 곳에서 발전했다.

특히 오래 보관하고 멀리 운반할 수 있는 말린 듀럼밀 파스타는 중동에서 발전한 기술이 지중해를 거쳐 이탈리아에서 다양한 형태로 자리 잡았다고 파르마의 파스타 박물관은 설명한다.2

시칠리아에서 말린 파스타가 만들어지고 유통되던 흐름은 리구리아와 나폴리 등으로 이어졌다. 항구와 교역로를 따라 이동하기 쉬운 음식이었던 것이다.

이후 제조 도구와 건조 기술이 발달하면서 파스타는 특별한 날의 음식에서 일상의 식탁으로 점차 넓어졌다.23 마르코 폴로가 중국에서 파스타를 처음 가져왔다는 이야기는 유명하지만, 이탈리아의 파스타 역사를 설명하는 근거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4

면의 종류: 가는 실에서 속을 채운 주머니까지

기본 재료가 단순해도 굵기와 폭, 홈과 빈 공간, 속재료에 따라 한입이 완전히 달라진다. 말린 파스타는 주로 듀럼밀 세몰리나와 물을 쓰고, 달걀을 넣어 만드는 생파스타도 있다. 모양을 살펴보면 수십 가지 이름이 조금씩 읽히기 시작한다.25

계열 대표적인 면 모양과 식감
아주 가는 긴 면 카펠리니(엔젤 헤어), 스파게티니, 스파게티, 스파게토니 머리카락처럼 가는 면에서 굵고 씹는 맛이 있는 면까지 이어진다. 가벼운 소스일수록 가는 면의 섬세함이 살아난다.
납작하고 긴 면 링귀네, 트레네테, 페투치네, 탈리아텔레, 파파르델레 좁고 납작한 것부터 폭이 넓은 리본까지. 폭이 넓어질수록 소스를 받는 면적과 존재감이 커진다.
속이 빈 관 모양 부카티니, 지티, 펜네, 리가토니, 파케리 길고 가는 구멍, 비스듬히 자른 끝, 굵은 관과 깊은 홈 등 차이가 있다. 소스와 작은 건더기가 안팎에 남는다.
나선과 접힌 모양 푸실리, 로티니, 카바타피, 제멜리, 파르팔레, 캄파넬레 꼬임, 주름, 나비의 가운데 접힌 부분이 소스를 잡아 준다.
오목한 모양 오레키에테, 콘킬리에, 루마케 작은 귀, 조개껍데기, 달팽이를 닮았다. 오목한 부분에 채소나 소스가 담긴다.
손으로 빚은 지역 파스타 카바텔리, 트로피에, 스트로차프레티 밀거나 비틀고 끌어당겨 만든 불규칙한 표면이 손맛을 남긴다.
속을 채운 파스타 라비올리, 토르텔리니, 토르텔로니, 아뇰로티, 메첼루네, 카펠레티 네모, 반달, 작은 고리와 모자 모양 안에 치즈·채소·고기 등의 속을 넣는다. 이름만 달라도 크기와 접는 방식이 다르다.
판과 작은 파스타 라자냐, 오르초, 디탈리니, 스텔리네 넓은 판은 겹쳐 굽고, 쌀알·짧은 관·작은 별 모양은 수프나 가벼운 요리에도 쓴다.

이것도 전체 목록이 아니라 대표적인 모양만 골라 놓은 것이다. 같은 이름도 지역과 만드는 사람에 따라 크기나 표면이 조금씩 달라진다.

파스타를 고르는 것은 소스의 무게와 원하는 식감을 함께 고르는 일이다. 얇은 카펠리니에 가벼운 오일을, 넓은 파파르델레에 진한 라구를 떠올려 보면 모양의 이유가 보인다.

다만 이런 조합은 규칙이라기보다 맛을 상상하는 출발점이다.58

요리의 종류: 면이 같아도 이야기는 달라진다

면의 이름과 완성된 요리의 이름은 다르다. 스파게티는 면의 형태이고, 카르보나라와 봉골레는 그 면으로 만들 수 있는 요리다. 같은 스파게티라도 소스와 조리법이 바뀌면 전혀 다른 한 접시가 된다.

이렇게 보면 파스타는 ‘크림, 토마토, 오일’ 세 가지로 끝나지 않는다. 면의 모양 × 속재료 × 소스 × 조리법이 만나며 수많은 요리가 만들어진다.579

지역이 만든 이름과 모양

파스타는 이탈리아 어디에서나 같은 모습으로 발전하지 않았다. 토스카나의 넓은 파파르델레는 진한 고기 라구와 자주 만나고, 에밀리아 지역의 토르텔리니는 속을 채워 국물에 담아 내는 전통이 있다.67 남부의 작은 귀처럼 생긴 오레키에테나 조개 모양 파스타를 보면, 한입에 무엇을 얼마나 담아 먹을지까지 생각한 손길이 느껴진다.

그래서 낯선 파스타 이름을 만났을 때는 외우려 하기보다 모양을 먼저 보면 좋다. Linguine는 납작하고 길다. Rigatoni는 굵은 관에 홈이 있다. Ravioli는 얇은 반죽 안에 속을 품는다.

이름이 메뉴판의 어려운 외국어에서 접시 위의 구체적인 모습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오늘은 어떤 파스타를 고를까?

처음의 랍스터 링귀네로 돌아가 보자. 길고 납작한 면은 가벼운 소스를 고르게 입고, 해산물의 맛을 가리지 않는다. 더 부드럽고 풍성한 크림 소스가 끌린다면 페투치네를, 버섯이나 고기 조각이 많은 소스라면 리가토니를 떠올릴 수 있다. 라비올리라면 소스보다 속재료가 무엇인지 먼저 살펴보게 된다.

파스타의 세계가 넓다는 건 선택하기 어렵다는 뜻만은 아니다. 오늘 원하는 맛이 산뜻한지, 진한지, 부드러운지, 씹는 재미가 있는지 생각하면 모양이 하나씩 눈에 들어온다. 그러면 평범해 보이던 한 접시에서도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된다.

자료 출처
  1. International Pasta Organisation, pasta shapes
  2. Museo della Pasta, exhibition itinerary
  3. Museo della Pasta, production history
  4. International Pasta Organisation, pasta myths
  5. Barilla, pasta and sauce pairing
  6. Academia Barilla, Tuscany
  7. Academia Barilla, tortellini
  8. Barilla, thin and thick spaghetti
  9. Academia Barilla, carbonara and vongo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