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cific Crest Trail | 4,265km, 길 위에서 인생을 다시 만나다

산 능선을 걷는 백패커
산 능선을 걷는 백패커 · Photo: Radomir Moysia / Unsplash (PCT 실제 노선 사진 아님)

2,650 Miles — A Journey Beyond the Ordinary

멕시코 국경의 작은 기념비 앞에 한 사람이 서 있다. 등에는 텐트와 침낭, 며칠 치 음식이 든 배낭 하나. 그가 향하는 곳은 캐나다 국경이다. 약 4,265km, 캘리포니아와 오리건, 워싱턴의 산맥을 따라 걷는 길. 이 길의 이름은 Pacific Crest Trail, PCT. 누군가는 모험을 위해, 누군가는 인생의 전환점을 찾기 위해 이 길에 오른다.

한 여성의 상상에서 시작된 길

1926년 워싱턴주의 교육자 캐서린 몽고메리(Catherine Montgomery)는 산악인 조지프 해저드에게 캐나다에서 멕시코까지 서부 산맥을 따라 이어지는 도보 여행길을 제안했다. 1930년대 클린턴 C. 클라크(Clinton C. Clarke)가 이 구상을 구체화했고, 등산가들과 청소년들이 길을 탐사했다. 1968년 PCT는 미국의 국가경관트레일(National Scenic Trail)로 지정되었다. 1993년 마지막 주요 연결 구간의 완성이 기념되었다. 한 사람의 상상에서 출발한 길은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현실이 되었다.

멕시코에서 캐나다까지, 세 개 주를 걷다

시에라네바다 산맥 · Photo: Bret Lowrey / Unsplash
시에라네바다 산맥 · Photo: Bret Lowrey / Unsplash

여행은 캘리포니아 캠포(Campo) 근처 멕시코 국경에서 시작된다. 남부 캘리포니아의 건조한 산악 지대와 사막을 지나면 시에라네바다의 화강암 봉우리와 눈 덮인 고개, 고산 호수를 만난다. 오리건에서는 침엽수림과 화산 지형, 크레이터 레이크 주변의 푸른 풍경이 이어진다. 워싱턴의 북부 캐스케이드에서는 험준한 산맥과 깊은 계곡을 지나 캐나다 국경으로 향한다. 한 번에 전 구간을 걷는 스루 하이킹(Thru-hiking)은 보통 4~6개월이 걸리지만 날씨와 체력, 산불, 적설량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워싱턴 북부 캐스케이드 산맥의 풍경
North Cascades · Photo: Toan Chu / Unsplash

세 개의 주,
캘리포니아에서 워싱턴까지, 길 위의 풍경

같은 PCT라도 캘리포니아와 오리건, 워싱턴에서 만나는 자연과 하루의 무게는 다르다. 이제 남쪽 국경에서 북쪽으로 그 길을 따라가 보자.

California — 사막에서 설산으로

캘리포니아의 PCT는 한 가지 풍경으로 설명할 수 없는 길이다. 출발점에서는 뜨거운 햇빛과 마른 흙냄새가 하루를 채우지만, 북쪽으로 걸음을 옮길수록 공기의 온도와 산의 표정이 달라진다. 여행자는 지도에 표시된 거리보다 물 한 병의 무게와 그늘 한 조각의 소중함을 먼저 배운다.

초원길을 홀로 걷는 하이커
초원길을 홀로 걷는 하이커 · Photo: Alex Moliski / Unsplash (PCT 실제 노선 사진 아님)
남부 캘리포니아의 건조한 산악 풍경
남부 캘리포니아의 건조한 산악 풍경 · Photo: Lisha Riabinina / Unsplash
시에라네바다 산맥
시에라네바다 산맥 · Photo: Bret Lowrey / Unsplash

멕시코 국경의 캠포에서 북쪽으로 걷기 시작하면 첫 번째 시험은 건조한 남부 캘리포니아다. PCT는 모래사막만 지나는 길이 아니다. 메마른 산비탈과 관목 지대, 협곡과 작은 마을을 지난다. 물을 구할 수 있는 지점 사이가 멀어 하이커들은 다음 수원까지의 거리를 계산하며 걸어야 한다.

케네디 메도우스 사우스(Kennedy Meadows South)는 시에라네바다로 향하는 상징적인 관문이다. 황갈색 산들이 화강암 봉우리와 고산 호수로 바뀌고, 눈이 남아 있는 고개가 나타난다. PCT에서 가장 높은 포레스터 패스(Forester Pass)는 해발 약 4,009m에 이른다. 계절에 따라 눈길과 거센 하천이 큰 위험이 되기도 한다.

캘리포니아는 PCT에서 가장 긴 구간이다. 사막에서 설산까지, 같은 주 안에서 완전히 다른 자연을 만난다. 먼 캐나다 국경보다 오늘의 물과 야영지가 더 중요한 순간들이 쌓여 여행의 첫 장을 만든다.

Oregon — 숲과 화산의 땅

오리건으로 넘어가는 순간, 길의 분위기는 한층 고요해진다. 높이 솟은 나무들이 햇빛을 걸러 내고 발밑에는 바늘잎과 흙이 부드럽게 쌓인다. 캘리포니아의 거친 고개를 넘어온 하이커에게 이 숲은 휴식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긴 여정은 여기서도 계속된다.

산을 향해 홀로 걸어가는 하이커
홀로 길을 걷는 하이커 · Photo: Alex Moliski / Unsplash
오리건 마운트 후드
오리건 마운트 후드 · Photo: Josh Smith / Unsplash
오리건 크레이터 레이크
오리건 크레이터 레이크 · Photo: Varadh Jain / Unsplash

오리건에 들어서면 풍경의 색이 달라진다. 침엽수림과 오래된 화산 지형이 이어지고, 비교적 완만한 구간에서는 하루에 더 긴 거리를 걷기도 한다. 하지만 여름의 모기 떼, 쓰러진 나무, 산불과 식수 문제는 여전히 길을 어렵게 만든다.

크레이터 레이크(Crater Lake)는 이 지역의 대표적인 풍경이다. 약 7,700년 전 화산 분화와 붕괴로 만들어진 칼데라에 물이 고여 형성된 호수로, 미국에서 가장 깊다. PCT와 연결되는 주변 경로를 이용하면 그 짙은 푸른빛을 만날 수 있다. 북쪽으로는 쓰리 시스터스와 마운트 제퍼슨의 화산 봉우리들이 이어진다.

아침에 텐트를 접고, 걷고, 마을에서 식량을 보충한 뒤 다시 숲으로 돌아가는 생활. 처음에는 낯설었던 단순함이 어느새 익숙해진다. 오리건은 긴 여행의 리듬을 배우는 구간이다.

Washington — 캐나다 국경을 향한 마지막 걸음

워싱턴에 들어서면 끝이 가까워졌다는 기대와 마지막 산길에 대한 긴장이 함께 찾아온다. 산등성이 너머로 또 다른 산이 펼쳐지고, 맑은 날의 장대한 풍경은 때로 구름과 비 속으로 사라진다. 이미 수개월을 걸어온 사람에게도 마지막 구간은 결코 가볍지 않다.

산악 계곡을 내려다보는 하이커
산악 계곡을 내려다보는 하이커 · Photo: Dan Cristian / Unsplash (PCT 실제 노선 사진 아님)
워싱턴 노스 캐스케이드의 고산 호수
워싱턴 노스 캐스케이드의 고산 호수 · Photo: Unsplash / Unsplash
워싱턴 마운트 레이니어
워싱턴 마운트 레이니어 · Photo: Caleb Riston / Unsplash

컬럼비아강의 브리지 오브 더 갓스(Bridge of the Gods)를 건너면 워싱턴주가 시작된다. 셰릴 스트레이드의 여행이 끝난 곳이지만, PCT를 완주하려는 사람에게는 마지막 장의 시작이다.

고트 록스 윌더니스의 좁은 능선과 글레이셔 피크, 노스 캐스케이드의 험준한 산악 지형이 기다린다. 늦여름이나 초가을에 이곳에 도착하는 북행 하이커들에게는 비와 추위, 이른 눈이 변수가 된다. 도로로 직접 연결되지 않는 작은 마을 스티헤킨(Stehekin)은 잠시 쉬거나 보급품을 마련하는 중요한 장소다.

마침내 캐나다 국경의 소박한 종점 표지판 앞에 선다. 화려한 결승선은 없다. 그러나 그곳에 이르기까지 걸어온 사막의 오후, 숲속의 새벽, 차가운 산바람이 하나의 여행이 된다. 4,265km는 더 이상 지도 위의 숫자가 아니라 자신의 두 발로 지나온 시간이다.

그런데 정말 4,265km 내내 길이 있을까?

북부 캐스케이드 산맥 · Photo: Alex Moliski / Unsplash
북부 캐스케이드 산맥 · Photo: Alex Moliski / Unsplash

PCT는 공식적으로 연결된 도보 트레일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잘 정비된 산책로가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구간에는 흙길이 있지만 눈이 산길을 덮거나 바위와 침식 때문에 경로가 희미해지기도 한다. 산불이나 산사태로 우회해야 하는 때도 있다. 하이커들은 지도와 GPS, 최신 트레일 정보를 확인하며 걷는다. 길은 존재하지만 자연이 언제나 그 길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PCT는 자연을 정복하는 여행이 아니라 자연의 변화에 맞추어 자신의 계획을 바꾸는 여행이다.

다섯 달 동안 길 위에서는 어떻게 살아갈까?

새벽 산맥을 향해 PCT 길을 걷는 백패커
Pacific Crest Trail · Photo: Bob Wick / BLM · USGS (Public Domain)
오리건 크레이터 레이크 · Photo: Varadh Jain / Unsplash
오리건 크레이터 레이크 · Photo: Varadh Jain / Unsplash

아침에 텐트를 걷고 배낭을 멘다. 하루 종일 걷다가 야영할 곳을 찾는다. 며칠마다 마을에 내려가 식량을 사거나 미리 보내 둔 보급품을 받는다. 따뜻한 식사 한 끼와 샤워 한 번이 큰 행복이 된다. 전체 비용은 장비와 생활 방식에 따라 크게 다르지만 약 8,000~12,000달러 이상을 예상하기도 한다. 이 길에는 트레일 매직(Trail Magic)이라는 문화가 있다. 낯선 이가 하이커에게 물과 음식, 이동 수단이나 쉴 곳을 제공하는 예상치 못한 친절이다. 그런 도움을 주는 사람들을 트레일 엔젤(Trail Angels)이라고 부른다. 혼자 걷는 길이지만 혼자만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여행은 아니다.

누구나 이 길을 걸을 수 있을까?

PCT를 모두 완주할 필요는 없다. 하루나 며칠만 걷거나 여러 해에 걸쳐 구간을 나누어 걷는 섹션 하이킹(Section Hiking)도 가능하다. 다만 체력과 장비, 식수 확보, 지도 사용법, 날씨 판단이 중요하다. 눈 덮인 고개와 급류, 폭염, 산불 등은 심각한 위험이 될 수 있다. 구간과 여행 방식에 따라 퍼밋이 필요하므로 출발 전 공식 정보를 확인해야 한다. PCT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누구에게나 쉬운 길은 아니다.

사람들은 왜 그토록 먼 길을 걷는가?

몇 달 동안 집을 떠나 매일 걷고, 텐트에서 잠들고, 다음 날 다시 배낭을 메는 삶. 누군가에게는 고단한 생활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 단순함이 자유일 수 있다. 도시에서 중요했던 직업과 지위는 산길을 대신 걸어주지 않는다. 남는 것은 자신의 두 발과 하루를 견디는 마음, 눈앞의 자연이다. PCT를 완주한다고 모든 사람의 인생이 달라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 긴 시간을 지나온 사람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먼 길을 걸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 않을까.

영화 《Wild》 — 한 여성이 혼자 걸었던 길

영화 Wild (2014) 공식 포스터, 리즈 위더스푼
영화 《Wild》(2014) · 포스터 © Fox Searchlight Pictures

2014년 영화 《Wild》는 셰릴 스트레이드(Cheryl Strayed)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 어머니의 죽음과 무너진 결혼생활, 혼란스러운 시간을 겪은 그녀는 1995년 홀로 PCT에 올랐다. 장거리 백패킹 경험이 거의 없던 그녀는 무거운 배낭과 발의 상처, 고독과 두려움을 견뎌야 했다. 그녀가 걸은 거리는 약 1,100마일(1,770km). PCT 전체를 완주한 것은 아니며, 모하비 인근에서 출발해 오리건과 워싱턴 경계의 브리지 오브 더 갓스(Bridge of the Gods)까지 걸었다. 길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않았지만, 자신을 다시 바라볼 시간을 주었다.

자료 및 여행 정보: Pacific Crest Trail Association (PCTA). 여행 전 최신 퍼밋과 안전 공지를 확인하세요.